전 세계 전력망을 흔든 60초 주기 주파수 흔들림 미스터리
- 기술 / 문광주 기자 / 2026-11-03 11:03:09
- 전 세계 전력망에서 정확히 60초마다 전력 주파수가 짧게 떨어지는 현상 관측돼
- 하락신호가 매분 00초가 시작된 시점에 정확히 발생, 수년간 같은 파형과 안정성 유지
- 미스터리의 전말: 범인은 '무정전 전원장치(UPS)'
-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핵심은 전 세계의 UPS장치들이 동시에 테스트를 수행하지 않도록 비동기화(Asynchronous)하는 것
전 세계 전력망을 흔든 60초 주기 '박동' 미스터리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광역 전력망은 교류 전류의 전압과 주파수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세밀한 자동 제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전력 생산량과 소비량의 균형이 깨지면 주파수가 흔들리기 때문에, 전력망 운용자들은 수시로 발생하는 미세한 변동을 조절하며 안정성을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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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세계 전력망의 주파수가 60초마다 잠깐씩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픽사베이 |
최근 율리히 연구소(Forschungszentrum Jülich)의 카스텐 하트만(Carsten Hartmann) 연구팀은 기존의 전력 소비 패턴이나 계획된 제어 조치로는 설명되지 않는 기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전 세계 전력망에서 정확히 60초마다 전력 주파수가 수 밀리헤르츠(mHz)씩 짧게 떨어지는 현상이 지속해서 관측된 것이다.
이 주파수 하락 신호는 유럽, 북미, 호주처럼 고도로 연결된 거대 전력망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비교적 규모가 작은 전력망에서도 똑같이 포착되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하락 신호가 매분 00초가 시작되는 시점에 정확히 맞춰 발생하며, 수년간 동일한 파형과 안정성을 유지해 왔다는 사실이다. 연구진은 정밀한 시계 장치에 의해 통제되는 어떤 원인이 전 세계 전력망에 동시 다발적인 부하를 일으키고 있음을 직감했다.
미스터리의 전말: 범인은 '무정전 전원장치(UPS)'
연구팀은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자신들의 일터인 율리히 연구소 캠퍼스 내 80여 개 건물 전력망에 측정 장비를 설치하고 정밀 추적에 나섰다. 그 결과, 이 '60초 주기 맥박' 신호는 배터리 기반의 무정전 전원장치(UPS)가 설치된 건물에서만 발생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UPS는 정전 등 갑작스러운 전력 공급 중단 시 정밀 기기와 서버 등 중요한 장치가 꺼지거나 손상되는 것을 막아주는 비상용 배터리 시스템이다. 이 장치들은 평소 전력망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자신의 배터리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정기적인 '자체 진단 및 성능 테스트(Leistungsabfrage)'를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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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열풍, 데이터센터의 급증과 커지는 위험성
단 한 대의 UPS가 사용하는 전력량은 미미하지만,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공장, 연구소, 정부 기관, 특히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디지털 제어 방식의 UPS 개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동시 다발적인 전력 소비의 규모도 함께 커진 것이다.
실제로 대형 데이터센터가 밀집한 아일랜드의 경우, 데이터센터 배터리 시스템이 국가 전체 전력 수요의 약 5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이에 따라 아일랜드 전력망의 60초 주기 주파수 하락 폭(진폭)은 2016년부터 2021년 사이에 무려 4배나 증가했으며, 최근 측정에서는 하락 폭이 20밀리헤르츠(mHz)를 넘어서기도 했다.
향후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으로 데이터센터 증설이 가속화되면 이 주파수 불안정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연구진은 UPS뿐만 아니라 스마트 제어 시스템이 적용된 에어컨, 히트펌프, 세탁기, 식기세척기 등 다양한 가정용·산업용 가전제품들 역시 유사한 동기화 패턴을 보이며 전력망 부담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력망 안정성 위협과 해법
이러한 주기적 주파수 흔들림은 이미 실제 전력망 운영에 실질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전력망 운용사들은 매분 발생하는 주파수 출렁임을 조화롭게 처리하기 위해 수력발전소 터빈을 수시로 가동하고 조절해야 했으며, 이로 인해 터빈 부품의 마모가 빠르게 진행되는 문제를 겪고 있다. 연구진은 만약 이 60초 주기 신호가 다른 우발적인 전력망 장애나 주파수 이탈과 동시에 겹칠 경우, 전력망 전체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초과하여 대형 정전 사고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핵심은 전 세계의 UPS장치들이 동시에 테스트를 수행하지 않도록 비동기화(Asynchronous)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제조사들이 진단 시점을 매분 00초로 고정하는 대신, 시간대를 무작위로 분산시키기만 해도 전력망에 가해지는 집중 부하를 완벽히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부분 경우 단순한 펌웨어 업데이트만으로도 이 문제를 수정할 수 있으며, 실제 율리히 연구팀의 제보를 받은 한 주요 UPS 제조업체는 이미 문제 해결을 위한 대응에 착수한 상태다.
[더사이언스플러스=문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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