뢴트겐 X-ray 발견 (1) "세상이 투명한 유리가 됐다"

Business News / 문광주 기자 / 2020-03-29 19:35:22
(읽기 2분 30초)
네덜란드 기술학교에서 제적당하고 스위스 대학에서 청강생으로 학업을 시작.
자신의 학생들에게는 엄하면서도 수줍은 성격.

 “X-ray 발견”  세상이 투명한 유리가 되다.

빌헬름 콘라드 뢴트겐(Wilhelm Conrad Röntgen)은 175년 전(1845년)에 태어났다.
뢴트겐 선이라고 명명된 것은 알고 있듯 그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그는 어떤 전자기파가 재료에 침투하고, 예를 들어 우리 몸의 내부를 사진처럼 묘사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아차렸다.
이 천재성은 125년 전에 시작됐다. 완전히 새로운 통찰을 가능하게 한 이 광선은 의학, 과학 및 기술에서 오늘날에도 탁월한 역할을 한다.

▲ 빌헬름 콘라드 뢴트겐 1900년 모습


빌헬름 콘라드 뢴트겐(Wilhelm Conrad Röntgen)이 X-선을 발견한 것은 의학의 역사에서 이정표로 간주 된다. 의사들은 이를 통해 투명하게 사람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그들의 오래된 꿈이 실현된 것에 고맙게 생각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 덕분이었다.
독일 물리학자가 "우연히" 엑스레이를 추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연한 운이 아니라 뢴트겐이 신비한 새로운 방사선의 비밀을 신속하게 밝혀내어 수많은 응용분야를 위한 길을 열어주는 그의 체계적인 접근 방식이었다. 오늘날 엑스레이는 일상 생활과 많은 연구영역에서 사용된다. 한편 그때와는 달리, 투과 광선을 다룰 때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학교에서 징계받은 학생이 노벨상 수상까지

빌헬름 콘래드 뢴트겐의 독특한 경력
Wilhelm Conrad Röntgen은 거의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물리학자는 고등학교 졸업장 없이 학교를 떠나야 했다.
그의 경력을 다시 처음부터 더듬어 보자. 뢴트겐(Röntgen)은 1845년 3월 27일 렌넵(Lennep)에서 태어났다. 오늘날 렘샤이드(Remscheid)의 한 지역이다. 3년 후, 그와 그의 부유한 부모는 네덜란드로 갔다. 거기서 독자로 자란 아이는 나중에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 있는 기술 학교에 다녔다.

이 교육 기관에서 Roentgen은 학업 경력에 댓가를 지불했다.
그는 급우가 엄한 선생을 그린 캐리커처에 감탄하면서 선생님에게 붙잡혔다.
뢴트겐은 곧 밝혀질 것이 뻔한데도 불구하고 그리는 사람을 밝히지 않고 침묵했다.
그 결과로 그는 학교에서 퇴학당한다.

▲ 독일 렘샤이드-렌넵에 있는 뢴트겐의 생가

Das Geburtshaus von Wilhelm Conrad Röntgen in Remscheid-Lennep


고교 졸업장 없이 청강생으로 대학수업 시작

부지런한 이 젊은이는 고등학교 졸업장 없이 처음에 대학 청강생으로만 등록할 수 있었다.
그는 스위스 친구로부터 취리히에 다른 옵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입학시험을 본 학생들은 고등학교 졸업장 없이도 지역 폴리테크닉에서 제대로 공부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시간은 뢴트겐에게 순조롭게 흘렀다.
스위스에서 불과 3년 만에, 기계 엔지니어로 디플롬 졸업장을 받았다. 삶의 여정에 중요한 스위스 지인들도 만났다. 물리학 교수 아우구스트 쿤트(August Kundt)는 졸업할 때 뢴트겐에게 물리현상에 대한 열정을 깨우고 물리학 대학원 과정을 시작하도록 지시한다. 지도교수 쿤트가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 조교로 독일 뷔르츠 대학에 데려갈 정도로 뢴트겐은 잘 적응을 했다.

▲ 1896년 뢴트겐이 촬영한 알버트 쾰리커(Albert Koelliker)의 왼손


뷔르츠부르크에서 흥미로운 발견

엑스레이도 개인적인 삶도 잘 진행됐다.
1872년 1월 19일, 취리히에서 공부할 때 알게 된 베르카 루드빅(Bertha Ludwig)과 결혼했다. 여관 주인의 딸은 사랑스럽지만 쉽지 않은 사람과 결혼한 것이다.
왜냐하면 뢴트겐은 엑스레이의 과학적 연구를 하면서 때때로 화를 가족도 잊을 정도였다.

중간 기착지인 기센(Gießen)에서, Röntgen은 1888년 아내와 함께 뷔르츠부르크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그는 총 12년 동안 물리학 연구소 교수이자 총장으로서 실험 물리학 교수가 됐으며 1895년에 가장 큰 발견을 했다. X-선은 나중에 뢴트겐 선으로 알려지게 된다.

▲ 1895년 뢴트겐 선을 발견할 때 뷔르츠대학 물리학연구소

Röntgens Laboratorium 1895 im ehemaligen Physikalischen Institut der Universität Würzburg 


물리학상 최초의 노벨상

이 성과를 위해 Röntgen은 몇 년 후 역사상 최초의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물리학자에게 있어 이처럼 자신의 삶이 분주하고 번잡한 것을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다. 뢴트겐은 그의 발견이 행복한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며 평생동안 겸손하게 살았다.

자신의 학생들에게 뢴트겐은 매우 엄격하지만 거의 동시에 수줍어하기도 했다.
그는 강의에서 매우 부드럽게 말을 해서 앞줄의 청중만이 그를 이해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발견은 1923년 2월 10일 그의 죽음을 넘어서서 매우 중요하다.
뷔르츠부르크 대학교(University of Würzburg)의 물리학 연구소에 있는 그의 실험실은 과학에 관심이 있는 물리학과 과학에 흥미를 지니는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순례지다.

*당시 과학계에서는 노벨 물리학상의 최초 수상자로 하인리히 헤르츠(Heinrich Hertz)가 유력했다. 칼스루에 대학교(현재 KIT)물리학과 교수였던 그는 전자기파에 관한 맥스웰 방정식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첫 과학자였다. 불행하게 그는 20세기가 시작되기 전 1894년에 병으로 사망했다. 헤르츠가 몇 해만 더 생존했다면 뢴트겐은 두 번째 수상자가 됐을 것이다. 
( 계속 )

[더사이언스플러스=문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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