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의 미스터리 (2) "비극적인 종말 사망의 원인은?"

Business News / 문광주 기자 / 2021-03-08 14:46:19
(3분 50초 읽기)
- 안토니우스의 칼, 식물 독에 의한 자살, 이집트 코브라에 물려서?
- 옥타비아누스는 클레오파트라를 살려 두는 데 더 관심이 많았다.
- 승전물로 활용 가치

칼, 독, 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비극적인 종말

클레오파트라의 삶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죽음도 전설적이며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이집트 여왕과 로마의 연인 안토니우스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다. 두 사람의 이른 비극적인 죽음은 곧 신화와 수많은 문학 작품의 주제가 되었다. 

▲ 1763년의 그림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죽음. © Musée des Beaux-Arts Brest

 


안토니우스의 '칼‘에?

분명한 것은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기원전 8월 30일에 죽었다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자연사가 아니었다.
안토니우스의 상대자 옥타비아누스는 직접 또는 간접 가해자로 간주 된다.
안토니우스가 먼저 죽었다.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Suetonius)에 따르면 옥타비아누스는 패배한 안토니우스가 칼로 자살하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반면에 플루타르크는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에 대한 가짜 소식을 듣고 기꺼이 자신의 검에 목숨을 버렸다고 기술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중상을 입은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에게 끌려와 그녀의 품에서 죽었다. 이때 클레오파트라는 *마우솔레움(Mausoleum; 왕족 귀족의 능, 사당/영묘)에서 보물과 함께 숨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클레오파트라는 옥타비아누스가 자신을 붙잡아 로마에서 승리의 행렬에 자신을 보여주는 것을 막고 싶어 했을 것이다.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에서 카이사르와 함께 있는 동안 이 굴욕적인 광경을 보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것을 피하고자 했다.

▲ Maussolleion 모델 (미니아 투르크 놀이 공원) author: Nevit Dilme

*마우솔레움(Mausoleum;영묘)은 건물 모양의 기념비적인 무덤. 이 표현은 기원전 377년에서 353년 사이에 오늘날 터키의 서쪽 해안에 있는 카린(Karien)의 총독에게 헌정된 할리카르 나서스(Halikarnassos 오늘날의 보드룸 Bodrum)에 있는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속한 Maussolos의 무덤 Maussol-eion에서 파생되었다. 이들은 종종 기도실과 아래 지하실로 구성된 2층짜리 작은 건축물로 지하실과 예배당을 지상 한 방에 결합할 수 있다. 기능적으로이 현대 영묘는 건물과 기념물의 혼합 형태를 형성하고 무덤 문화 내에서 죽은 자의 추모, 표현 및 후세에 대한 호소의 측면을 충족한다.

▲ Maussolos의 무덤 유적 (2009)

옥타비아누스와의 협상 후 클레오파트라는 먼저 영묘를 떠나 그녀의 연인을 위한 화려한 장례식을 개최할 수 있었다. 이집트의 관습에 따르면, 그녀는 그를 방부 처리하게 한 후 경비를 받고 있는 왕궁으로 호위되어 체포된다. 옥타비아누스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처럼 보임으로써 클레오파트라는 마지막으로 안토니우스의 무덤이 있는 마우솔레움(Mausoleum:왕족 귀족의 능, 영묘/사당)을 방문하도록 그를 설득 할 수 있었다.

클레오파트라와 독사

지금 일어나는 일은 전설과 수많은 예술 작품의 주제다.
겨우 39세인 클레오파트라는 묘에서 죽지만 자살인지 살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는 클레오파트라에 대해 무화과 바구니에 들어 있는 독사(살모사 또는 이집트 코브라)가 마우솔레움으로 반입된 이야기 출처를 인용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이 뱀을 가슴에 앉히고 클레오파트라는 치명적인 독사에 물려 죽었다.
▲ 우라에우스 뱀으로도 알려진 이집트 코브라는 신의 상징이자 이집트 파라오의 보호자였다. © John Walker

카시우스 디오(Cassius Dio)의 "로마 역사"에는 클레오파트라는 독이 더 잘 퍼지도록 머리핀으로 피부를 찢었다고 언급돼 있다. 그러나 플루타르크와 디오는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의 정확한 상황이 수수께끼라고 강조했다.

위 두 역사가는 클레오파트라가 죽기 직전에 일종의 작별 편지를 썼고 메신저를 통해 옥타비아누스에게 보냈다고 기술했다. 옥타비아누스는 즉시 사람들을 영묘로 보냈고 문이 열렸지만 여왕이 죽어 가거나 이미 죽은 것을 발견했다.

아니면 결국 독약이었을까?

그러나 현대 역사가들은 이 뱀독 자살 시나리오에 대해 심각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살모사의 독은 유독하지만 항상 인간에게 치명적이지는 않다.
반면에 코브라의 독은 충분히 강력하지만 그렇게 물린 후에도 클레오파트라가 독소로 죽는 데 몇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또한 길이가 2미터에 이르는 코브라를 무화과 바구니에서 담아 경비가 세심한 묘소로 밀반입 할 수 있었을지 논쟁이 계속된다.

이상한 점;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클레오파트라의 하인 두 명이 그녀와 함께 죽었다.
그들은 여왕의 발치에 누워 발견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일부 연구자들은 클레오파트라가 독약에 의해 죽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트리어 대학의 역사가이자 클레오파트라 전문가 크리스토프 쉐퍼(Christoph Schäfer)는 "식물 독에 의한 죽음은 확실한 죽음이며 종종 효과가 더 빠르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완전히 의식을 잃어 죽게 되는 독미나리에서와 같은 끔찍한 죽음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쉐퍼(Schäfer)와 독성학자 디트리히 멥스(Dietrich Mebs)는 클레오파트라가 처음에 아편을 진정시키고 마취제와 독미나리를 제공한 독 칵테일을 마신 후 죽음을 초래했다고 의심한다. "그럼 클레오파트라에게는 멋진 죽음이었을 것"이라고 Schäfer는 BR 방송에서 말했다.

살인보다 자살

뱀은 종교적 의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클레오파트라는 의도적으로 뱀에 물린 그녀의 죽음을 준비했다.
"클레오파트라는 이시스의 화신이었고 우레우스 뱀도 이시스의 또 다른 화신으로 간주되었다"고 그는 설명한다. "이시스의 한 화신이 이제 다른 하나의 생에서 죽음으로 나아가게 된다면 이것은 신들의 직접적인 화신이다.”
▲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폼페이의이 프레스코 화에서 그는 독약을 통한 자살로 묘사된다. © historisch

이러한 이유로 Schäfer는 일부 연구자들이 가정하듯이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이 옥타비아누스의 살인이 아니라 자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옥타비아누스는 클레오파트라를 살려 두는 데 더 관심이 많았다.
"클레오파트라를 죄수로 보여주는 것은 매우 매력적이었을 것이다"고 Schäfer는 말한다.
그녀가 로마 내전의 주범으로 선언했기 때문에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승리는 선전 목적으로 적절하게 인식됐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의 죽음보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그녀가 어디에 묻혔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계속)

[더사이언스플러스=문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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