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티아인, 인간의 피부를 가죽으로 사용해

기초과학 / 문광주 기자 / 2024-01-03 13: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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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키타이인은 기원전 800년부터 서기 300년경까지 흑해에서 몽골에 이르는 유라시아 대초원을 지배했던 유목 기마민족
- 우크라이나 남부의 스키타이 무덤에서 발견된 최소 2,400년 된 가죽 화살통의 뚜껑은 인간의 피부로 만들어졌다.

스키타이인들은 인간의 피부를 가죽으로 만들었다.
고고학자들은 고대 기병 전사들의 화살통에서 인간의 피부를 발견했다.


소름 끼치는 발견:
스키타이 기병 전사들은 인간의 피부를 가죽으로 가공해 화살통을 장식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분석 결과 처음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남부의 스키타이 무덤에서 발견된 최소 2,400년 된 가죽 화살통의 뚜껑은 인간의 피부로 만들어졌다. 스키타이인들이 죽인 적의 가죽을 승전물로 사용했는지 아니면 영적인 이유로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런 일이 얼마나 자주 발생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 이 3세기 스키타이 황금 빗은 두 명의 스키타이 전사(오른쪽)가 로마인과 싸우는 모습을 묘사한다. 허리띠에 장식된 화살통이 선명하게 보인다. © Levan Ramishvili/공개 도메인

스키타이인은 기원전 800년부터 서기 300년경까지 흑해에서 몽골에 이르는 유라시아 대초원을 지배했던 유목 기마민족이었다. 그러나 이 문화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대부분 정보는 금 장신구와 기타 부장품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소위 쿠르간(kurgan)이라고 불리는 스키타이 고분에서 나온다. 그리스 역사가들의 기록은 또한 동방에서 온 두려운 기병 전사들에 대해 더 주관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 The map shows the sites from which leather samples were recovered: 1. Bulhakovo; 2. Ilyinka; 3. Kairy; 4. Kislychevate; 5. Ol’hyne; 6. Orikhove; 7. Otradne; 8. Sadove; 9. Tyahinka; 10. Vil’na Ukraina; 11. Vodoslavka; 12.Vysuns’k; 13. Zelene; 14. Zolota Balka (Map: M. Daragan, based on a DTM STRM Map)

그러나 왕자 무덤에서 나온 장엄한 금 물체를 제외하면 스키타이인의 일상 생활과 그들의 경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고 코펜하겐 대학교의 Luise Ørsted Brandt와 그의 동료들은 설명했다. 이는 특히 나무, 뼈, 직물, 가죽과 같이 스키타이의 일상생활을 특징짓는 재료에 적용된다.

스키타이 화살통용 가죽은 어디에서 왔나?

고고학자들은 “특히 가죽 물체는 일반적으로 심하게 분해되고 조각나며 사진을 잘 찍지 못하기 때문에 연구에서 소홀히 여겨지는 분야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죽은 승마 유목민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들은 그것을 고삐, 안장, 신발, 바지로 사용했으며 가장 중요한 무기인 화살통을 담는 용기로 사용했다. “스키타이 전사들은 거의 항상 허리띠에 화살통을 달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며, 거의 모든 스키타이 무덤에는 가죽 화살통 세트 전체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금속 화살촉만 살아남은 경우도 많다”고 Brandt와 그의 팀은 보고했다.
▲ 장식된 소매 가죽 옷을 입은 스키타이 전사의 묘사: 1-2. 북쪽 방의 Haimanova Mohyla의 길드 은그릇(Bedzilia 이후, Polin 2012, Figs 150, 158); 3~4. 우크라이나 Perederiyiva Mohyla의 황금 원뿔(이미지: 키예프, 우크라이나 역사 보물 박물관).

스키타이 화살통의 가죽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연구자들은 약 2,400년 된 우크라이나 남부의 스키타이 무덤 18개에서 발굴된 화살통에서 채취한 45개의 가죽 샘플을 조사했다. 원래 종의 가죽으로 가공된 가죽을 식별하기 위해 그들은 특수 질량 분석법을 사용하여 가죽 샘플에서 특정 펩타이드의 화학적 "지문"을 분석했다.
▲ 스키타이 화살통 샘플의 출처. 빨간색으로 윤곽선이 표시된 가죽 샘플은 인간의 피부로 만들어졌다. © M. Daragan/PLoS ONE, doi: 10.1371/journal.pone.0294129; CC 4.0

양, 염소 – 그리고 인간의 피부

분석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스키타이 화살통의 상당 부분이 유목민들이 농장 동물로 키우던 양과 염소의 가죽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Brandt와 그녀의 팀은 두 개의 가죽 샘플에서 인간 펩타이드를 발견했다. “샘플 7과 21의 단백질은 인간 기원을 나타낸다”고 그들은 보고했다. 이는 서로 다른 두 위치에 있는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적어도 두 개의 화살통이 인간의 피부로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 우크라이나 토브스타 모힐라(Tovsta Mohyla)의 스키타이 황금 가슴뼈(Image: After Polidovich 2021). 출처:관련논문

고고학자들은 “우리의 결과는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소름끼치는 주장을 확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기록에는 스키타이인들이 적의 피를 마시고, 인간의 두피를 전리품으로 모으고, 죽은 적의 가죽을 벗겨 화살통 덮개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헤로도토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들의 죽은 적들은 “손과 못과 모든 ​​것을 가져다가 화살통을 담는 상자로 만들었다”고 역사가는 말했다.
▲ 그리스 꽃병에 활과 가죽 화살통을 들고 있는 스키타이 전사의 이미지. © historisch

전투에서 트로피 또는 마법 지원?

현재 결과는 오랫동안 중상적인 공포 이야기로 일축되어 왔던 헤로도토스의 피에 굶주린 묘사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정확했음을 보여준다. 스키타이인들은 주로 가축의 가죽을 가공했지만 어떤 경우에는 인간의 가죽도 사용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던 것 같다. 이는 정예 전사와 스키타이 왕자의 화살통에 특히 해당되며, 이는 무덤 발견에서 알 수 있듯이 전투에서 매우 중요했다.
▲ ZooMS 및 LC-MS/MS 분석의 식별 원형 차트(출처:관련논문 Human and animal skin identified by palaeoproteomics in Scythian leather objects from Ukraine / PLOS ONE)

그런데 왜? Brandt와 그녀의 동료들에 따르면, 인간의 피부 화살통 덮개는 일종의 트로피, 즉 전투에서 사망한 적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이 무서운 관행에는 영적인 배경이 있다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아마도 죽인 적의 힘과 용기는 화살통 소지자에게 전달되거나 향후 전투에서 스키타이 전사를 보호하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스키타이인들이 얼마나 자주 인간의 피부를 가죽으로 가공했는지, 그 뒤에 실제로 어떤 동기가 있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향후 가죽 샘플에 대한 추가 분석을 통해 이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PLoS ONE, 2023; doi: 10.1371/journal.pone.0294129)
출처 : PLoS ONE

[더사이언스플러스=문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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