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15년 후 : 원자력 참사와 그 여파 (1) "무시된 위험"
- Business News / 문광주 기자 / 2026-03-10 21:58:40
4분 읽기
- 2011년 3월 11일, 원자력 발전 역사상 최악의 사고 중 하나가 발생
- 후쿠시마 참사의 여파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잔해 완전히 해체하고 오염 제거하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릴 것
- 해수주입 너무 늦어
피할 수 있었던 재앙 :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발생 경위
2011년 3월 11일, 일본은 삼중 재앙을 겪었다. 먼저 규모 9.0의 강진과 쓰나미가 혼슈 북동부 해안 지역을 강타했다. 그리고 후쿠시마 다이이치 원자력 발전소 또한 치명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발전소의 심각한 안전 결함이 원자로 노심 용융을 촉발했다. 이 사고는 체르노빌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최악의 원자력 사고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후쿠시마 다이이치에서 결정적인 몇 분, 몇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고, 이것이 원자로 노심과 방사능 낙진에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수년이 지나서야 완전히 밝혀졌다.
지진과 쓰나미
해안에 직접 위치한 원자력 발전소 1호기부터 3호기는 계획대로 지진에 신속하게 대응해 가동을 중단했다. 하지만 약 30분 후 해안에 닥친 15미터 높이의 쓰나미는 발전소의 방호벽을 뚫고 원자로 건물, 제어실, 그리고 지하에 위치한 13개의 비상 디젤 발전기 중 12개를 침수시켰다. 외부에 설치된 다른 발전기들과의 연결선도 끊어졌다.
결과적으로 원자로와 냉각 시스템에 전력 공급이 중단되었고, 제어실의 모든 전자 장비가 고장 났다. 발전소 직원들은 원자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고, 제어할 수도 없게 되었다.
무시된 위험
하지만 쓰나미로 인한 침수는 예측 가능했고 예방할 수 있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2015년 보고서는 "사고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일본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매우 안전하다고 여겨져 이 정도 규모의 원자력 사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 결과, 발전소 설계의 심각한 안전 결함이 운영사인 도쿄전력과 당국 모두에 의해 무시되었다.
세계원자력협회는 "논의는 있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2008년,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의 과학자들은 이 지역에서 최대 10미터 높이의 쓰나미가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다른 전문가 보고서들 역시 해안 원자력 발전소의 방파제 및 기타 안전 조치는 최소 10미터 높이의 쓰나미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당국은 이를 외면했다.
바로 인접한 후쿠시마 제2원자력 발전소를 비롯한 다른 발전소들은 이러한 기준에 맞춰 건설되거나 개보수되었지만, 후쿠시마 제2원자력 발전소는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2010년, 도쿄전력은 수백 건의 문서(일부는 내부 문서) 분석 결과를 토대로 최대 쓰나미 높이를 5.7미터로 가정한 자체 보고서를 제출했다. 침수 위험이 높은 발전소 지하에 디젤 발전기를 설치하고 방수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점은 문제 제기도, 개선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캘리포니아대학교의 코스타스 시놀라키스(Costas Synolakis) 연구팀은 2015년 연구에서 "내부 기준이 준수되었더라면, 국제적인 검토가 이루어졌더라면, 그리고 기존의 지질학적 및 수력학적 사실들을 상식적으로 평가했더라면 후쿠시마 참사는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모든 부주의의 결과는 2011년 3월 11일에 명백히 드러났다. 후쿠시마 다이니 원전은 지진과 쓰나미에서 큰 피해 없이 살아남았지만, 후쿠시마 다이이치 원전은 참담한 결과를 맞았다.
원자로 노심 용융 및 수소 폭발
정전으로 인해 지진 발생 3시간 만에 1호기 냉각수 수위가 연료봉 높이까지 떨어졌다. 지진 발생 4시간 후, 원자로 노심 온도는 섭씨 2,800도까지 치솟았고, 지르코늄 피복재로 덮인 이산화우라늄 펠릿 연료봉이 녹기 시작했다. 지르코늄은 차폐 효과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수증기와 반응해 수소를 발생시켰다. 이로 인해 원자로 용기 내부 압력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3월 12일 오후 3시 36분경(현지 시간), 첫 번째 수소 폭발이 발생해 1호기 지붕과 상부가 날아가고 방사성 붕괴 생성물이 방출되었다. 원자로 노심 깊숙한 곳에서는 용융된 연료 덩어리가 압력 용기 바닥을 뚫고 약 65cm 깊이의 2.6m 두께 콘크리트 기초 속으로 가라앉았다.
2호기와 3호기에서는 남아있는 디젤 발전기와 배터리 덕분에 각각 70시간과 36시간 더 냉각이 지속됐다. 그러나 이후 냉각수 공급이 중단되었고, 원자로 노심이 과열되어 수소 폭발과 노심 용융으로 이어졌다.
해수 주입은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 이러한 사태 악화를 막을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원자로에 즉시 해수를 주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발전소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발전소의 돌이킬 수 없는 파괴를 의미한다는 이유로 처음에는 해수 주입을 미뤘다. 해수 냉각은 일본 당국의 압력에 못 이겨 이루어졌지만, 너무 늦었다. 1호기에서는 지진 발생 28시간 후, 즉 노심 용융이 시작되고 첫 번째 수소 폭발이 발생한 지 4시간 후에야 해수 주입이 시작되었다. 다른 호기들에서도 해수 주입은 너무 늦게 이루어졌다. (계속)
- 2011년 3월 11일, 원자력 발전 역사상 최악의 사고 중 하나가 발생
- 후쿠시마 참사의 여파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잔해 완전히 해체하고 오염 제거하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릴 것
- 해수주입 너무 늦어
후쿠시마 – 15년 후 : 원자력 참사와 그 여파
2011년 3월 11일, 원자력 발전 역사상 최악의 사고 중 하나가 발생했다. 지진과 쓰나미 이후 일본 후쿠시마 다이이치 원자력 발전소에서 원자로 노심 용융과 여러 차례의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그 이후 후쿠시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해체 및 오염 제거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후쿠시마 참사의 여파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자로 내부의 용융된 핵연료는 여전히 치명적인 방사능을 방출하고 있으며, 이 고농도 방사성 물질을 해체하는 정확한 방법은 여전히 시험 단계에 있다. 방사능에 오염된 냉각수는 계속해서 제거해야 하지만, 일부는 이미 땅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잔해를 완전히 해체하고 오염을 제거하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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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3월 11일 이전의 후쿠시마 다이이치 원자력 발전소. © 도쿄전력 |
피할 수 있었던 재앙 :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발생 경위
2011년 3월 11일, 일본은 삼중 재앙을 겪었다. 먼저 규모 9.0의 강진과 쓰나미가 혼슈 북동부 해안 지역을 강타했다. 그리고 후쿠시마 다이이치 원자력 발전소 또한 치명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발전소의 심각한 안전 결함이 원자로 노심 용융을 촉발했다. 이 사고는 체르노빌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최악의 원자력 사고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후쿠시마 다이이치에서 결정적인 몇 분, 몇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고, 이것이 원자로 노심과 방사능 낙진에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수년이 지나서야 완전히 밝혀졌다.
지진과 쓰나미
해안에 직접 위치한 원자력 발전소 1호기부터 3호기는 계획대로 지진에 신속하게 대응해 가동을 중단했다. 하지만 약 30분 후 해안에 닥친 15미터 높이의 쓰나미는 발전소의 방호벽을 뚫고 원자로 건물, 제어실, 그리고 지하에 위치한 13개의 비상 디젤 발전기 중 12개를 침수시켰다. 외부에 설치된 다른 발전기들과의 연결선도 끊어졌다.
결과적으로 원자로와 냉각 시스템에 전력 공급이 중단되었고, 제어실의 모든 전자 장비가 고장 났다. 발전소 직원들은 원자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고, 제어할 수도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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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염되어 가동 중단된 원자로: 2011년 3월 24일, 1호기 원자로 제어실 모습. © 도쿄전력 |
무시된 위험
하지만 쓰나미로 인한 침수는 예측 가능했고 예방할 수 있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2015년 보고서는 "사고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일본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매우 안전하다고 여겨져 이 정도 규모의 원자력 사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 결과, 발전소 설계의 심각한 안전 결함이 운영사인 도쿄전력과 당국 모두에 의해 무시되었다.
세계원자력협회는 "논의는 있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2008년,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의 과학자들은 이 지역에서 최대 10미터 높이의 쓰나미가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다른 전문가 보고서들 역시 해안 원자력 발전소의 방파제 및 기타 안전 조치는 최소 10미터 높이의 쓰나미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당국은 이를 외면했다.
바로 인접한 후쿠시마 제2원자력 발전소를 비롯한 다른 발전소들은 이러한 기준에 맞춰 건설되거나 개보수되었지만, 후쿠시마 제2원자력 발전소는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2010년, 도쿄전력은 수백 건의 문서(일부는 내부 문서) 분석 결과를 토대로 최대 쓰나미 높이를 5.7미터로 가정한 자체 보고서를 제출했다. 침수 위험이 높은 발전소 지하에 디젤 발전기를 설치하고 방수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점은 문제 제기도, 개선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캘리포니아대학교의 코스타스 시놀라키스(Costas Synolakis) 연구팀은 2015년 연구에서 "내부 기준이 준수되었더라면, 국제적인 검토가 이루어졌더라면, 그리고 기존의 지질학적 및 수력학적 사실들을 상식적으로 평가했더라면 후쿠시마 참사는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모든 부주의의 결과는 2011년 3월 11일에 명백히 드러났다. 후쿠시마 다이니 원전은 지진과 쓰나미에서 큰 피해 없이 살아남았지만, 후쿠시마 다이이치 원전은 참담한 결과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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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3월 15일, 원자력 발전소 3호기 폭발 직후. © 도쿄전력 |
원자로 노심 용융 및 수소 폭발
정전으로 인해 지진 발생 3시간 만에 1호기 냉각수 수위가 연료봉 높이까지 떨어졌다. 지진 발생 4시간 후, 원자로 노심 온도는 섭씨 2,800도까지 치솟았고, 지르코늄 피복재로 덮인 이산화우라늄 펠릿 연료봉이 녹기 시작했다. 지르코늄은 차폐 효과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수증기와 반응해 수소를 발생시켰다. 이로 인해 원자로 용기 내부 압력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3월 12일 오후 3시 36분경(현지 시간), 첫 번째 수소 폭발이 발생해 1호기 지붕과 상부가 날아가고 방사성 붕괴 생성물이 방출되었다. 원자로 노심 깊숙한 곳에서는 용융된 연료 덩어리가 압력 용기 바닥을 뚫고 약 65cm 깊이의 2.6m 두께 콘크리트 기초 속으로 가라앉았다.
2호기와 3호기에서는 남아있는 디젤 발전기와 배터리 덕분에 각각 70시간과 36시간 더 냉각이 지속됐다. 그러나 이후 냉각수 공급이 중단되었고, 원자로 노심이 과열되어 수소 폭발과 노심 용융으로 이어졌다.
해수 주입은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 이러한 사태 악화를 막을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원자로에 즉시 해수를 주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발전소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발전소의 돌이킬 수 없는 파괴를 의미한다는 이유로 처음에는 해수 주입을 미뤘다. 해수 냉각은 일본 당국의 압력에 못 이겨 이루어졌지만, 너무 늦었다. 1호기에서는 지진 발생 28시간 후, 즉 노심 용융이 시작되고 첫 번째 수소 폭발이 발생한 지 4시간 후에야 해수 주입이 시작되었다. 다른 호기들에서도 해수 주입은 너무 늦게 이루어졌다. (계속)
[더사이언스플러스=문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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