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 논란 다시 재점화되다

지구환경 / 문광주 기자 / 2026-10-06 13: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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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25년 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파울 크뤼첸(Paul Crutzen)을 비롯한 연구진은 인간의 영향을 받은 이 시기를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학적 단위로 정의하자고 제안
- 2023년 말, 작업반 연구원들은 홀로세를 인류세로 대체할 만한 지질·층서학적 근거가 충분하다는 결론에 도달
- 담당 위원회는 2024년 해당 제안을 거부

인류세 논란 다시 재점화되다


인간이 지구를 이전의 그 어떤 생물보다도 크게 변화시켰을까? 

이에 따라 우리는 '인간의 시대'라는 새로운 지질시대를 시작한 것일까?

현대 문명과 함께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Anthropocene)'가 시작되었을까? 많은 지질학자의 견해에 따르면 이를 뒷받침할 충분한 증거와 암석 내 측정 가능한 지표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당 위원회는 2024년 해당 제안을 거부했다. 그리고 지금 이에 대한 매서운 비판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내부 윤리 보고서에서도 확인되었듯, 당시 투표 과정에서 심각한 절차적 오류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 우리 인간은 그 어떤 생명체보다도 지구를 변화시켜 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로운 지질학적 "인류 시대"를 시작한 것일까? 이미지:pixabay

우리는 다른 어떤 생물도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지구를 변화시켜 왔다. 우리 문명은 지구의 순환 체계, 자연, 기후를 바꾸어 놓았으며 새로운 물질들을 만들어냈다. 지구상에는 이미 생물량(Biomass)보다 인간이 만든 물질이 더 많으며, 생물 종의 수보다 인공 구조물의 수가 더 많다. 플라스틱, 방사성 낙진, 오염 물질은 가장 외딴 지역에서조차 발견되고 있다.

플루토늄 낙진과 호수의 기준점


약 25년 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파울 크뤼첸(Paul Crutzen)을 비롯한 연구진은 인간의 영향을 받은 이 시기를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학적 단위로 정의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특정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새로운 세(Epoch)는 약 1만2천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이후 계속되어 온 홀로세(Holocene) 등 이전 시기와 구별되는 명확하고 특징적인 지표를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새로운 시대의 시작 시점이 시간상으로 정의되어야 하며, 그 시대의 시작을 나타내는 국제 기준점이 될 지질학적 층서가 존재해야 한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 국제지질과학연합(IUGS)은 2009년 인류세 작업반(AWG)을 출범시켰다. 2023년 말, 작업반 연구원들은 홀로세를 인류세로 대체할 만한 지질·층서학적 근거가 충분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지질학자들은 인류세의 시작 시점을 1950년대 무렵으로 설정하고, 그 지표로 퇴적물에서 측정 가능한 플루토늄 낙진을 지정했으며, 기준점으로는 캐나다 크로퍼드 호수(Crawford Lake)의 퇴적층을 제시했다. 작업반의 관점에서는 인류세를 새로운 지질학적 세로 승인받기 위한 모든 요건이 충족된 것으로 보였다. 

▲ 캐나다 크로퍼드 호수에서 채취한 이 얇은 지층은 인류세의 기준점이 되었는데, 이는 1950년대 초 방사성 낙진의 시작을 명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 © Tim Patterson

거부당한 안건


하지만 상황은 다르게 흘러갔다. 2024년, IUGS 산하 하위 기구인 제4기 층서학 소위원회(SQS)는 인류세를 공식 지질시대에 등재하자는 제안을 부결했다. IUGS 측은 "이로써 인류세 개념은 공식적인 지질학 용어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거부 사유로는 제안된 시작 시점(1950년경)에 대한 논란이 있고, 인간의 영향이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시기에 균일하게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 등이 언급되었다. 또한 제안된 시대가 시작된 지 수십 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너무 이르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에 대해 최근 강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예나에 위치한 맥스 플랑크 지오인류학 연구소의 게오르크 쉐퍼(Georg Schäfer)와 그의 동료들은 "아무리 과학적으로 잘 뒷받침된 가설이라도 반박될 수 있으며, 그러한 거부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다. 문제는 결정이 내려진 방식과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논문을 통해 IUGS와 그 하위 위원회가 범한 여러 절차적 오류와 과실을 지목하며, 인류세 부결 결정의 정당성을 떨어뜨리고 무효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무효 투표, 부당한 영향력, 그리고 불투명성


절차적 오류 중 하나는 투표에 참여한 위원회 위원 16명 중 11명이 IUGS 자체 규정에 따르면 의결권이 없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비록 투표 이후 향후 결정을 위해 선정 기준이 수정되었지만, 인류세 투표 결과는 정정되거나 재실시되지 않았다고 연구진은 전했다.

연구진은 "또한 작업반은 논의 과정에서 제안서에 대한 오해가 명백히 드러났을 때조차 의견에 반론을 제기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밝혔다. 일부 지질학적 논거는 검토조차 되지 않았으며, 인류세 작업반 멤버들은 타당한 비판점에 대해 답변하거나 제안서를 수정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IUGS의 내부 윤리 보고서 역시 이러한 위반 사항을 확인하고 비판했으나, 아무런 후속 조치가 이어지지 않았으며 보고서의 세부 내용도 비공개로 남아있다.

정당성과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


쉐퍼와 동료들은 "이번 논쟁은 단순히 암석과 화학적 지표에 관한 문제만이 아니다. 과학 기관들이 이처럼 광범위한 결정을 투명하고 공정한 방식으로 내리고 있는가에 관한 문제"라며, "인류세 개념은 이미 지질학을 넘어 대중적 담론으로 자리 잡았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인류세라는 시대에 대한 결정은 투명하고 절차적으로 결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 여러 지질학자의 시각에서 볼 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쉐퍼 연구팀은 "AWG의 제안이 지표의 불충분함이나 시점 설정의 논란 등 순수한 과학적·방법론적 이유로 거부된 것인가? 아니면 기관 내 정치와 전략적 영향력이 결정적이었는가?"라며 "절차상의 위반은 거부 결정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과학적 논의를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지질학자들은 이제 IUGS에 관련 문서를 완전 공개하고 결정 과정을 독립적인 검토에 부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연구진은 "우리는 IUGS의 결정을 철회하거나 층서학적 증거를 다시 논의하자는 것이 아니라,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이는 인류세 문제뿐만 아니라 지질학 전체의 신뢰성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출처: Georg Schäfer et al., Earth's Future, 2026; doi: 10.1029/2025EF007638

[더사이언스플러스=문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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